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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상범의 광고톡톡]‘인스턴트의 시대’에서 16년차 카피라이터가 전하는 ‘생각의 기쁨’
[HOOC=서상범 기자]인스턴트, 스낵 컬처, 순삭(순간삭제). 현대의 콘텐츠, 문화생활의 단면으로 자리잡은 용어다. 순간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이 용어들 속에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생각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아니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 심지어 쿨(cool)하고 힙(hip)하지 않은 일로 치부돼버린다. 그러나 디지털의 시대에서 아날로그의 역습이 시작되듯이, 이런 인스턴트의 시대에서 ‘생각의 기쁨’을 말하며 동명의 책까지 낸 이가 있다. 
유병욱 TBWA CD(사진제공=유병욱 CD)

광고회사 TBWA에서 16년차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유병욱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3일 신사동 TBWA 사옥에서 유병욱 CD를 만났다.

그는 “광고는 순간적인 재치의 영역만이 아닌, 깊은 생각이 증명하는 업(業)”이라고 말했다. 이어 “순간의 아이디어는, 순간적인 성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본질을 해결하고, 오랫동안 생명을 갖는 광고는 결국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경우가 많더라”고 덧붙였다.

사실 최근 광고업계는 디지털의 열풍으로 인해, 이른바 ‘훅’하는 영상, 자극적인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광고주들은 적은 비용으로 바이럴(VIRAL)이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뭐든 자신들의 제품과 브랜드가 소셜미디어에서 회자가 되길 원한다. 실험카메라, 웹드라마와 같은 형식이 유행하자 비슷한 아류들이 쏟아져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들은 순간적인 효과는 있을지언정, 결코 영속적이지 않다. 결국 광고업계를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회자되는 캠페인은 유 CD가 지적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 전부가 아닐까? 
유병욱 CD의 사무실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들. 그는 좋은 생각, 글을 접할 때 마다 이를 포스트잇에 기록한다(사진제공=유병욱 CD)

실제 이런 깊은 생각의 태도를 바탕으로 그가 만든 작업물들 역시, 휘발성이 아닌 영속적으로 회자되는 것들이다. 대표작인 대림산업의 “진심이 짓는다”라는 카피는 물론, 시디즈와 진행한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ABC마트와 함께 했던 ‘세상에 없던 신발’ 캠페인 등, 대상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을 바탕으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둬왔다.

집, 의자, 신발. 모두 기존에는 물리적인 주거의 공간, 신체의 일부가 머무는 곳, 발의 보조수단 정도의 인사이트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광고들 역시 이런 부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유 CD는 이들 대상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을 깊게 판 것이다.

책을 낸 이유 역시 생각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고민했던 과정과 질문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책이 단순히 어떻게(HOW TO)?라는 지침서보다는, 독자들과 편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내가 느꼈던 생각하는 기쁨을 공유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기쁨이 떠오르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아무리 돌아봐도 좋은 생각이 태어나는 장소, 시간과 같은 물리적 법칙은 없는 것 같다”며, “다만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글, 순간들을 접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유 CD는 “태도는 순간적으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붙여보는 시간이 필요한 일, 즉 아날로그적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며 “그렇게 형성된 퀄리티있는 아날로그적 태도는 디지털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끊임없이 자극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어깨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유 CD는 “회사 내에 존재하는 박웅현이라는 거인에게서는, 일의 방식은 물론, 삶의 태도를 배웠다. 그리고 TBWA가 7회째 진행하고 있는 대학생 스피치 프로그램인 ‘망치’에서는 아직은 여물지 않았지만, 진정성과 열정이 있는 학생들과의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내가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그들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니 나 스스로의 성장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만난 그의 느낌은, 나무와 같았다. 풍성한 잎을 가지진 않았지만, 올곧게 바로 선, 그래서 흔들리지 않을 뿌리깊은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사진제공=유병욱 CD)

특히 그는 망치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쉴 틈 없는 일을 하면서도 짬을 내(정말 짬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과 몇 달간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까지 총 7회가 진행된 망치의 모든 멘티들이 기억에 남지만, 굳이 한 명을 꼽는다면, 1회에서 발표한 신상훈이란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자가이발소’라는 주제로 ‘왜 내가 혼자 머리를 깎는가’를 전했는데, 일반적인 스피치가 아닌, 노래라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1회차를 준비하면서 스피치 프로그램, 7분이라는 시간만 정했다. 대부분 어떻게 말로, 스피치로 전달할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말이라는 벽, 대화라는 형식 자체를 노래라는 방식으로 넘어버렸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유 CD는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한 대중적인 말하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그는 “주어진 시간동안, 청중 모두를 휘어잡고 싶을테지만, 그 순간을 너무 의식해서는 안된다. 그 과정을 다듬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당신을 의미있게 만들었기에 필요한 것은 그 결과를 담담하게 사람들에게 전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레이업슛’처럼 청중이라는 골대 앞에 ‘살짝‘ 두고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생각의 기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에 있다”며 “생각의 품에 안겨사는 우리 모두에게 생각이 주는 기쁨이 더 크게, 더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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