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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일간의 만삭체험기]⑤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HOOC=서상범 기자]우선 독자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분명 지난해(달이 아니다) 말에 글을 썼고, 마지막 글을 쓰겠다고 예고까지 했는데...그러는 동안 해가 바뀌었고, 무려 9달이 지났다.

과분한 관심과 응원을 받았던 터에, 미안함의 무게가 더욱 크다.

7일 동안의 만삭체험. 시작은 미안함이었다. 결혼을 해서, 서로 사랑해 아이를 가졌지만, 사실 남자들은 임신기간 동안 크게 변하는 것이 없었다. 신체는 당연히 그대로고, 출근을 하고 술을 마시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엄마.제가 정말 미안해요

물론 책임감과 아내에게 잘 해야겠다는 감정이 생기기는 한다. 그러나 아내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수많은 변화들에 비하면 100분의 1도 달라지지 않는다.

임신 초기부터, 중기까지,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태아에게 혹시나 해가 될까봐, 아내는 그 좋아하던 커피도 끊었고(참을 수 없을 때는 디카페인 커피를 먹었다는 건 비밀), 걸음걸이 하나도 조심해야 했다. 입덧을 심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러다보니 일종의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아내의 감정에 공감을 하지 못할까봐, 출산이라는 큰 짐을 아내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감정말이다. 
볶음밥을 앞에 두고 좋아하던 임신 기간의 아내. 아내는 원래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도 뱃속의 아이를 위해 그랬으리라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된 것도 미안했다. 기존의 업무와 다른 뉴미디어 팀을 맡다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오롯이 아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때도 정말 많았다. 와이프 역시 직장에서 누구보다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임신은 물론이고,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될 것은 불보듯 뻔 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은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남편의 무관심으로 인한 독박육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통계를 보고서였다.

그래서 만삭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육아에 있어서 적극적인 참여에 대한 다짐과 함께, 아내가 지금 겪고 있는 엄청난 변화에 조금이나마 공감을 하고 싶었다. 물론 기사에서 많은 분들이 댓글로 지적해주신 것 같이 몸뚱이에 체험장비를 얹은 것 밖에 안되는 일이었다. 장기의 변화, 입덧과 같은 신체의 직접적인 변화는 물론,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감정적 상태까지, 실제 임산부들의 그 것에는 발 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때만해도 몰랐기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내 앞에 무슨일이 펼쳐질지...

하지만 적어도 몇 시간, 길어도 하루가 넘지 않는, 형식적인 체험이 아닌, 적어도 1주일이란 기간 동안 생활의 변화를 느껴본 것은 의미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10kg의 무게가 더해졌을 뿐인 내 몸이 이렇게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생활을 하기에, 대중교통, 직장 생활 등 그토록 평범하게 접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특히 주변에서 함께 일을 했던 만삭 워킹맘들이 직장에서 힘든 투쟁을 매일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을 넘어,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직장 뿐이겠는가? 길을 걷는 것, 화장실을 가는 것, 양말을 신는 사소함 하나하나가 모두 투쟁이었다.

한편 많은 분들, 특히 어머니들이 보내준 공감의 응원글들도 놀라웠다. 임신했을 때를 떠올리며 울컥했다는 공감부터, 이 기사를 좀 더 일찍 썼더라면 우리 남편한테도 체험을 시켰을텐데라는 애정어린 투정까지. 매 회마다 수천개의 댓글과 공유를 통해 정말 다양한 독자들의 응원을 받았다.

만삭 체험 컨셉의 뉴미디어 콘텐츠는 물론, 지상파 방송사에는 아예 내가 체험했던 소재와 스토리를 1시간짜리 다큐로 만들기도 했다(해당 방송 작가님, 미리 연락주셨으면 성심성의껏 제작에 도움을 드렸을텐데요...놀랐습니다. 방송 보고)

하지만 나는 결코 훌륭한 남편은 아니다. 흔히 아내분들이 말하는 우리집 큰 아들의 범주에 들어가는, 그냥 평범한 남성이다.
의외로 지하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갖춰져있지 않은 곳이 많았다.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내가 이럴려고 만삭체험을 했나라는 자괴감도 느꼈다

아내는 기사가 나가면서 친구들에게 남편 기사 잘봤다며, 좋은 남편을 둬서 좋겠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때마다 분을 삭히기가 힘들었다고 한다(왜 분을 삭혀야만 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이런 과분한 응원을 받으면서도, 속상함이라는 감정도 느꼈다. 첫 기사가 나간 후 나에게 군대는 다녀오고 이런 체험을 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2002년~2004년 8사단 수색대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당시 사용했던 999k의 무게는 만삭 체험 장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대라는 제도와, 출산이라는 행위를 왜 비교의 대상에 올려놓아야 하는건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녀 간의 무참한 공격과 비난이 저질러지는 것을 보며, 참 많이 속상했다.

분명 내가 체험한 이 짧은 시간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리란 것. 잘 알고 있다. 기사가 나간 후에도, 대중교통 내의 임산부 좌석을 놓고 수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해마다 이런 류의 만삭 체험기사는 누군가에 의해 또 세상에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그 공감의 시간들이, 나는 물론이고, 적은 수의 누군가에게라도 영감을 줄 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지만, 아주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빠들의 육아휴직은 물론이고, 여성가족부에서는 부모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예비 부모, 특히 아빠들의 인식개선과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는 방향보다는,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는 디테일한 운영의 묘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우선해 필요한 것은 임신과 출산, 육아가 여성 혼자만이 감내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아무리 정부가 각종 대책을 쏟아내도, 그 대책이 실행되는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엄마아빠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준, 아들이다. 사실 모든 순간이 예쁘지만,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예쁜 것 같다

덧붙여, 그동안 아이는 태어났다.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말이다.

찬바람이 불 때 태어났던 아이는, 벚꽃과 장마를 함께 보냈고, 이제는 선선한 가을 바람을 함께 맞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오면서 나와 아내의 세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만삭 체험은 끝이 났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누군가의 아들, 남편이라는 존재를 넘어,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지만 꾸준히 전해보려 한다.

물론 그 과정이 장밋빛으로만 비춰지진 않을 것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물론이지만, 느껴야 할 상실감, 외로움, 두려움 등등을 역시 공감이 가는 글로 전하고 싶다. 

끝으로 아내에게, 임신과 출산에서는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 너무 적어 미안했지만, 육아에 있어서는 반반을 넘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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