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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과도 개발 할 수 있어요” 문과 출신 기자의 해커톤 참관기
[헤럴드경제=서상범기자] “해커톤이요?아. 재미있는 걸 하시네요”

11월 초의 어느날이었다. 현대카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현대카드에서 ‘해커톤’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백하자면, 당시 나는 해커톤이 뭔 지 정확하게 몰랐다. IT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정도로 희미하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뭔가 힙(HIP)한 트렌드라는 것은 주워들었기에, 아는 척을 하고 말았다. 
지난 24일 현대카드 해커톤 현장. 웃고 있는 이모티콘처럼, 마냥 웃을수만은 없는 치열한 현장이었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물었어야 했다. IT를 출입한 적도 없는 문과 출신 기자라는 핑계라도 댔어야 했다. 그러나 어쭙잖은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다.

“재밌겠죠? 기자님도 해커톤 발표 날에 놀러오세요” 현대카드 관계자는 해맑게 말했다.

그렇게 카드사 출입도 아닌 나는, 현대카드의 해커톤 발표 현장에 가게 됐다.

물론 그냥 아는 척을 한 죄(?)로 참석을 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뉴미디어 팀 소속으로, 디지털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해커톤이란 것이 뭔지, 어떤 분위기인지, 무엇을 다루는 지 한번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집에 와서 ‘해커톤’을 검색해봤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해커톤(Hackathon)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다. 여기서 해킹이란 컴퓨터를 불법으로 공격하는 행위가 아닌(불법 해킹은 크래킹이라고 부른다), 난이도 높은 프로그래밍을 뜻한다. 마라톤처럼 제한된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놓고 프로그래밍의 능력을 뽐내는 자리인 것.

이 해커톤은, 그러나 최근 IT업계에서는 지속적 발전과 창의력 향상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평소 업무환경에서 생각지 못한 서비스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직접 결과물로 만들어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특히 페이스북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인사, 마케팅, 재무 등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해커톤을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IT전문인력과 비전문인력이 함께 모여서, 이런저런 상상을 현실로, 제한된 시간내에 만들어내는. [사진=현대카드 제공]

여기까지 공부를 해보니, 더 궁금증이 생겼다. 현대카드라는 금융회사가 왜 이런 IT기업들이 하는 행사를 하는 걸까? 이들이 이 행사를 통해서 얻고자하는 것을 뭘까?

이런 궁금증을 안은 채, 지난달 24일.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으로 향했다. 안내를 하러 나온 현대카드 관계자의 얼굴이 퀭했다. 평소 현대카드의 조인성으로 불리며 멀끔했던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저도 해커톤에 참가중이에요”라는 답을 했다.

전날 23일 오후부터 24시간 동안 진행된 해커톤에 참가한 12팀 중 하나라는 것이다.

“홍보실에 속한 직원도 해커톤에 참가했어요?”라는 질문에 그는 “홍보실은 물론이고, 감사부, 신입사원들에 이르기까지 외연이 정말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는 1차 접수된 아이디어만 200여개였고, 이 중 12팀이 올라온 만큼 우승을 노려보고 있다고 말했다. 
1등 팀에게는 실리콘 밸리 견학이라는 특전이 걸렸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그러면서 그는 1등 팀에게는 미국 실리콘밸리 견학이라는 특전이 걸려있다며, 얼마 전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또 자리를 비우게 되면, 팀장에게 미안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팀장에게 미안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내에 따라 들어간 사옥 10층에는 들어선 직원들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24시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각 팀이 내놓을 최종 결과물들을 구경하고, 응원하러 온 일반 직원들이었다.

이들 앞에는 회색 후드 집업을 입은 총 12개의 팀이 자신들의 발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 당 4~5명으로 이뤄졌는데,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같은 IT 전문 인력은 물론, 비IT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함께 구성됐다고 한다.

이렇게 팀을 구성한 이유는 디지털이란 것이 꼭 전문 인력만의 업무가 아니라, 비IT 인력들 역시 함께 고민하고, 이해 협력해야 하는 분야라는 것을 현대카드의 구성원들에게 경험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현대카드 측은 설명했다.
밤샘 작업에서 필요한 것은 에너지. 해커톤을 주최하는 회사는 직원들이 밤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도록 간식 제공의 의무가 있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이는 현대카드가 지향하는 디지털 드리븐(DIGITAL DRIVEN) 전략과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홈페이지와 광고 등에 쓰이는 기업로고(CI)를 12년 만에 ‘디지털 현대카드’로 바꿨다. 여기에 국내 카드사 가운데 유일하게 실리콘밸리에 직접 사무소를 열고 핀테크를 연구하고 있으며 디지털 관련 인력과 전략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회사가 디지털이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데, 조직 내에서, 특히 비 IT인력들이 이에 대한 공감과 이해, 협력이 없다면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의미다.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됐다. 팀당 3분간의 발표, 그리고 2분간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질의응답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했다.

주제는 정말 다양했다. 회사의 본업에 관련된 서비스에서부터 일견 현대카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신사업까지. 
생각하고 만들어낸 주제를 시연하는 참가자. 조금 어설프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디테일이 조금 떨어져도, 아이디어가 중요하기 때문 [사진=현대카드 제공]

정형화된 회의와 기획에서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톡톡 튀는 주제들이 튀어나왔다.

예를 들어 카드 정보를 활용한 소셜 데이팅 앱을 제안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카드 실적과 신용도를 게임으로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무엇보다 현대카드라는 회사를 잘 모르는 기자의 입장에서 신선했던 것은, 이런 것도 이 회사가 다루는 영역이었나?하는 것들이었다.

가령 차량 채권을 담당하는 팀이, 손쉽게 연체 차량을 찾아내고, 이 정보를 공유하는 어플을 제안한 팀이 있었다. ‘카메라(CARmera)라는 이름의 이 팀을 통해 현대캐피탈이 자동차 금융 1위사로서 단순히 구입에 관한 업무만이 다가 아니라, 할부나 채권 등 이후 업무에도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부분들은 이 자리에 모인 현대카드 일반 구성원들에게도, 다른 기능, 다른 부서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공유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열띤 발표의 시간이 흐른 후 투표가 진행됐다. 임원들은 물론, 현장의 관객으로 참여한 일반직원들이 QR코드를

활용해 한 표씩을 행사했다.

영예의 우승은 위에서 언급한 ’카메라(CARmera)팀‘에게로 돌아갔다. 이들은 현업에서의 고민들을 실용적이고 직관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리콘 밸리로 떠나게 됐다. 
우승을 차지한 팀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의 기념사진. 후드티를 뒤집어쓴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현대카드 제공]

우승을 차지한 팀의 아이디어는 물론, 출품된 다른 아이디어들 역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 실제 업무 현장에서 적용할 예정이라고 현대카드 측은 밝혔다.

행사가 끝난 후 참가했던 홍보실 직원을 찾아갔다. 수상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흥분으로 다소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실리콘 밸리를 가지 못해 아쉽게 됐다”라는 말에 그는 “내년에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문과 출신인 내가 이렇게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각하는 것을 하나의 결과물로 구현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지만 재밌는 일이란 걸 느끼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협업이 정말 중요하가는 것을 배웠기에 내년에는 꼭 우승을 노리겠다”고 밝혔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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