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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스파이어] 나는 시를 쓰는 할매입니다 ② 전소순 할머니
[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이 기사는 전북 완주 삼례읍에 사는 유한순 할머니와 전소순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되었습니다. 두 할머님은 삼례읍 한글문해학교인 진달래 학교를 다니며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나는 시를 쓰는 할매입니다 ② 유한순 할머니 기사보기

전소순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학교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쓴 시 속에 살고 있다" 말했다.

# 내 생일은 두 번 ② 전소순 할머니

나는 내가 하도 답답하고 남이 나를 몰라줄 때 시를 써요. 남을 위해서 쓰는 거 아니고. 왜냐면 하고 싶은 말을 여다 쓰고 나면, 속이 시원해.

그래서 내 생일은 두 번 있어요. 하나는 더운 여름 날이고, 다른 하나는 한글 배우러 학교 입학하는 날. 해도 안 뜰 때 나가가꼬 걸어서 학교에 가면 해가 훤히 떠. 그렇게 맨날 학교 다닌 지 이제 햇수로 팔 년이 되었어요.

나는 너무 없이 힘들게 살아가꼬,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언니들은 일정시대 때 일본 학교를 다녔고, 6.25 지나고 남동생들은 학교에 갔어. 나는 팔남매 중에 다섯 째인데, 중간에 태어나니까 암것도 배우질 못했지. 죽어라 일만 하고 살았어. 그때는 계집애들 글 배우면 친정에 편지 쓴다고 안 가르치던 때여.

6.25 전쟁이 끝나도 할머니들은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내 나이 스물네 살 먹을 적에 성 씨 하나 보고 중매로 시집을 왔어요. 근디 없어도 너무 없이 살았어. 경기도, 강원도, 포항, 여기저기 셋방살이로 얹혀서 이사를 얼마나 다녔나 몰라요. 계란장사, 쌀장사, 과일장사, 옷까시장사, 안 해본 장사가 없었어.

하루 벌고 하루 겨우 먹고 살다봉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엄마야 아빠야 나 아무렇게 살고 싶다, 울면서 막 그랬어. 근디 아버지가 쌀 두 가마니 주면서 딱 그러시는 거야.

“시집을 잘 가든 못 가든, 남편 집에 들어가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 하고, 죽어도 그 집 귀신 노릇을 해야지, 왔다리 갔다리 하는 꼴은 못 본다.”

지난 세월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울었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게 산 인생이여라, 서러워서 울었지.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위치한 진달래 학교(한글문예학교). 평균나이 70세 학생들이 학년별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았다.
자다가도 일어나 시를 쓴다는 할머니들은 자신만의 시선을 글로 풀어내는 영락없는 시인이다.

그러다 일흔셋 먹어서 친구 따라 진달래 학교에 갔어. 그때 우리 집 양반이 많이 아파서 간호한다고 뭔 정신이 있겠어. 배우고 죽어라 공부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그랬어. 남편 먼저 저세상 떠나고서야 글을 제대로 배웠어.

학교에서 하라는 것은 다 했어. 근데 글씨가 예쁘게 안 써져요. 삐뚤빼뚤 써졌는디 그래도 지금은 조금 예쁘게도 써지고 띄어쓰기도 할 줄 알고. 그 재미로 이렇게 살아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로 상도 받고 부담시럽지. 근데 상을 받으면 애들 상장 받을 때 좋아하듯이 신나. 기분이 좋은디 집에서 누가 칭찬할 사람 없응께 서운하지만.

나는 내가 쓴 시 속에 머물고 있어요.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래 전이지만, 그래도 하고픈 말 이렇게 쓰면 재밌어요. 혼자 무슨 낙으로 살겠어. 남 흉을 볼지도 모르고 내 자랑할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뭘 써서 말이라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전소순 할머니가 쓴 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쓰면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낮이나 밤이나 글을 써야겠다, 하면 날밤 새더라도 끝장을 내야 해. 앉아서 책을 읽다가 조금 돌아댕기다 시를 쓰다가, 그게 너무 좋아. 괴로운 것이 없고. 그러다 잠이 안 오면 다시 책 보고. 책 보면 잠도 오더만.

젊을 때는 사는 걱정, 늙으니까 가는 걱정, 맨날 근심에 항상 주름살 피었는디, 시를 쓰니까 사람들이 내 나이로 안 봐요. 화장하고 그라믄 더 그래. 그렁께 내가 저기 다른 노인 양반들 보고, 우리 세상도 살아보게 학교 같이 댕기자, 하지. 그래서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는 가봐. 고통스러운 내 인생, 이제는 안녕했어.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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